높은 금리를 찾아 자금을 움직이는 일명 ‘금리 노마드족’의 시대다. 은행권의 정기예금 금리는 최고 연 5%를 넘어서며 10여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달 들어서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는데, 이전보다 금리가 오히려 떨어진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고금리 예적금 시대가 이제 정점에 이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Chapter1. 은행권 예금 금리 오히려 떨어졌다?
19개 은행에서 취급하고 있는 정기예금 가운데 최고 금리를 제시하고 있는 상품은 2일 기준 BNK부산은행의 더(The) 특판 정기예금으로 연 5.4%이다. 뒤이어 SH수협은행의 Sh플러스알파예금(2차)과 전북은행의 JB123정기예금(만기일시지급식),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e그린세이브예금이 최고 연 5.3%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1년 만기 기준) 전체 40개 정기예금 가운데 7개가 최고 연 5% 이상 금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한국은행이 빅스텝을 단행했을 당시, 은행권에서 수신금리를 적게는 50bp에서 많게는 100bp까지 곧바로 올리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분위기는 사뭇 ‘미온적’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25bp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에서는 예적금 금리를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하거나 0.1~0.2%p 올리는 데 그쳤다. 심지어 최고금리가 오히려 떨어진 정기예금 상품들도 등장했다. 우리은행의 `우리 WON플러스 예금`과 국민은행의 `KB 스타 정기예금`이 대표적이다. 우리 WON플러스 예금은 지난달 13일 연 5.18%(1년 만기 기준)에서 현재 연 4.98%로 0.20%p 낮아졌고, ‘KB스타 정기예금’은 연 5.01%에서 4.70%로 0.31%p 금리가 내려왔다.
Chapter2. 도대체 왜? 이유가 뭐길래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예적금 금리 인상 경쟁에 제동을 걸었던 점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국은 은행의 예금금리 인상이 자칫 저축은행과 같은 제2금융권의 자금을 빨아들여 ‘유동성 위기’를 촉발할 수 있고, 대출금리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 최근 금융권에 과도한 수신 금리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뜻을 전한 바 있다.
여기에 시중금리가 하향조정되고 있고, 채권시장 자금 경색우려로 중단됐던 은행채 발행이 재개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진 점도 예적금 금리의 가파른 상승세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지난 3개월간 은행채 AAA 3년물(무보증) 금리는 10월 21일 5.255%로 고점을 찍은 뒤 12월 1일 4.644%로 내려왔고, 6개월물(무보증) 금리는 11월 16일 4.560% 이후 12월 1일 4.390%로 소폭 떨어졌다. 은행채 발행이 원활해지고 심지어 시중금리까지 떨어지고 있다면 은행으로서는 굳이 우대금리를 얹어가면서 수신금리를 과도하게 올릴 필요가 없다. 예적금 역시 중요한 자금조달 수단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보다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창구가 있기 때문이다.
Chapter3. 고공행진 예금 금리, 정말 정점일까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해 연 3.5% 안팎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마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확실성이 많지만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간다면 금리 인상을 연 3.5% 안팎에서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연 3.25%인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한 차례 더 올린 뒤 인상 기조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은행권 수신금리가 기계적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따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멈추거나, 더 나아가 인하 움직임까지 보인다면 은행권 예적금 금리도 방향성을 같이 할 수는 있다. 채권시장 안정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방향성, 그리고 물가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변수로 지목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예적금 금리가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관측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Chapter4. “방망이 무조건 짧게 휘두를 때 아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금 투자 전략을 달리 가져가야 할 때라는 조언들이 나온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만기가 짧은 예적금 위주로 예치·불입하면서, 높은 금리 상품이 나올 때마다 갈아타는 전략이 유효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금금리가 정점에 이르러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예적금 기간도 3개월, 6개월, 1년 등으로 분산하고, 비교적 만기가 긴 상품 비중을 높여나가는 방법을 고려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김현섭 KB국민은행 한남PB센터장은 “예적금을 선호하는 자산가 고객분들을 보면 향후 금리인상 기조가 꺾일 것을 대비해서 만기가 2년, 3년인 예금에 가입하시는 분들도 있다”면서 “정기예금도 만기가 짧은 상품에 일부, 만기가 긴 상품에 일부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수신금리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상승세는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자산의 일정 부분은 3개월, 6개월 등 비교적 만기가 짧은 예적금을 통해 만기가 끝날 때마다 더 높은 금리 상품으로 갈아타는 전략을 이어가되 추가로 2년, 3년 장기 상품으로도 분산해 금리인하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이때 비교적 만기가 긴 2년, 3년 예금의 경우에는 상품 종류도 1년 만기에 비해 적고, 심지어 금리가 만기 1년 상품보다 더 낮은 경우가 생각보다 꽤 많다. 일반적으로 은행 정기예금은 예치기간이 길수록 높은 금리를 적용하지만, 금리 정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2~3년짜리 장기예금 상품 금리를 높일 경우 은행권에서 추후 부담해야 할 조달비용이 커질 수 있다보니 만기 2~3년 예금 금리를 만기 1년 예금보다 더 낮추는 것이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향후 금리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보니 장기물보다는 단기물 조달에 집중하고 있다”며 “1년 만기 예금 금리를 더 높여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때문에 연 5%대 만기 2년, 3년인 정기 예적금 상품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2일 기준 현재 만기 2년 정기예금의 경우에는 KDB산업은행의 정기예금, 광주은행의 행운박스예금이 최고 연 5.0% 금리를, 만기 3년 정기예금의 경우에는 광주은행의 행운박스예금이 최고 연 5.10%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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